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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23 세일즈맨의 죽음

Vivisection 2016. 3. 23. 14:59
세일즈맨의 죽음


상황의 전환이 매끄럽게 이미지화가 안되어서 읽는 도중에도 이해가 어려웠다. 1930년대 경제대공황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몰락한 가장을 그린 이 이야기에서, 30년간이나 회사 생활에 몰두하고 헌신을 했음에도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시대상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이건 회사의 문제일까 시대적 상황의 문제일까? 아니면 개인의 능력의 문제일까? 개인적으론 경제대공황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대 대한민국과 비교했을때 일반 직장인이 30년간 일해서 겨우 온전한 집이나 차 따위를 구비하는 걸 감안한다면 경제대공황이라는 특수한 배경은 배제하더라도 지금 이 상황도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술은 발전하고 자본은 축적되고 각 사회의 물리적 거리는 줄어들었는데 어째서 사람들은 여전히 풍족하지 못한걸까.

전형적인 가부장적 사고의 아버지를 토대로 자라온 아들은 아버지의 의견에 반하기 힘들었고, 아들을 끔직히 사랑하던 아버지는 시험의 부정행위나 운전면허 없이 운전을 하는 것을 긍정하는 등 객관적인 시선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한다. 아버지의 행동에 반하기 힘들었던 아들의 의지와, 잘못된 행위에 그럴수도 있다는 부모의 그릇된 가르침이 아버지의 자살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이끈게 아닐까?

그릇된 가치관을 토대로 잘못된 교육을 했던 윌리는 남의 집 자식이 변호사가 되었는데 왜 제 자식은 그러지 못한건지 판단을 못한다. 자식을 기르는 부모의 입장이란건 철저히 주관적일수 밖에 없는것일까? 남의 조언을 무시하고 당신이나 잘하라며 이상한데에서 지키는 자존심을 보며 나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에서는 결국 능력부족으로 오랫동안 일했던 직장에서 나오게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는 가장으로서 능력이 부족한 것을 티낼수 없었기에 그 역할을 다하려 많은 허세를 부려야했던 윌리를 보며 아버지들의 고뇌는 시대를 넘어서 모두 비슷하구나 싶었다.

사회적 보장제도의 부족으로 퇴직 후에도 경제적으로 불안하여 종국엔 자살이라는 아픈 결과를 냈어야했다. 그만큼 가장이라는 지위가 무거웠던걸까? 스스로 삶을 끊을만큼 무거웠던 가장의 역할 이전에, 가족을 그만큼 사랑하여서 그럴수밖에 없던 게 아닐까? 이유야 어떻든 드라마의 새드엔딩은 언제나 가슴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