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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에: 다 쓰고 보니깐, 글이 정말 난잡하네요. 특히, 대화를 계속 옮겨적다 보니, 반점(콤마)을 남발한 것은 죄송합니다. 따옴표도 일일이 붙이자면 (제가) 너무 힘들 거 같아 굳이 따로 붙이지 않았습니다. 잘 유의해서 읽어주세요. 허허.


영상이론과는 정원이 10명에 불과하지만, 그만큼 경쟁률도 낮습니다. 올해가 5:1, 지난해가 6:1이었습니다. 연극학과나 무용이론과 정도를 빼면, 한예종 모든 과를 통틀어 제일 낮은 편에 속하죠. 미술이론과보다도 훨씬 낮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준비하려는 학생도 별로 찾기 힘들고, 또 준비를 하려 해도 정보가 정말 없습니다(물론 한예종 입시 자체의 정보가 별로 없긴 합니다). 해서, 영상이론과 준비하는 학생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좀 자세하게 쓰려고 합니다. 운영자 님과 까페 채팅에서 만나 나누었던 얘기도 섞어서 쓰겠습니다.


들어가며

올해 재수생입니다. 한예종 준비는 재수 시작하면서, 그러니깐 올해 초부터 했고, 수능 공부도 같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쓸데없이 수능 공부했던 시간이 정말 아깝긴 하지만(정확히 말하면, 결국 등급 잘 나오지도 않은 수리 영역에 매달렸다는 거)... 아무래도 재수생이다 보니 한예종에 다 걸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깐요. 영상이론과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는 게 많아야 합니다. 잘난 척 같아도 어쩔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운영자께서도 말씀하셨듯이, 2차 논술 문제가 정말 어렵거든요. 창의력을 측정한다기보단 뭔가 배경지식이 없다면 손도 대지 못할 문제가 많습니다. 그나마 올해 논술은 좀더 쉬워지긴 했는데, 이건 이따가 다시 자세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영화를 공부한다는 것과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헷갈립니다. 단지 평소에 영화 좀 좋아한다고, 씨지브이 좀 자주 댕긴 것과 영상이론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영화를 공부하자면 영화를 좋아하는 게 우선이죠. 헌데 영화 매니아라고 해서 교수들이 뽑아 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학교 들어가서도 실컷 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입니다. 영화 '공부', 언어 및 영어 공부.


1차 시험 준비

언어 시험이 매년 들쭉날쭉합니다. 창의적사고능력평가(창사능)에서 수능틱하게 바뀌었다고 하더니, 올해는 또 바뀌었습니다. 이미 한 달 전이라 가물가물하긴 한데, 올해 언어 시험은 수능보다는 아무래도 전통 창사능에 좀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아닐 수도 있구요. 언어 영역을 준비할 때 기출 문제를 꼭 다 풀어봐야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평소 수능 언어 영역을 꾸준히 준비하던, 그리고 성적이 잘 나왔던 학생이라면, 최근 2개년 정도만 두세 번 풀어 봐도 될 거 같습니다.


문제는 신문인데, 신문이 입시에서 중요하냐, 쓸모가 있냐, 는 언제나 수험생 사이에 논란이 되어 왔던 부분입니다. 저는 당연히 학생이면 신문을 읽어야 한다는 쪽입니다. 물론 수능 성적에 직접적인 도움은 거의 하나도 안 됩니다. 어쨌든, 듣자하니 올해 방송영상과 쪽은 면접에서 시사를 많이 물어봤다고 들었습니다. 영상이론과도 면접에선 필요 없었지만 2차 논술에서 시사 상식이 있으면 쉽게 연결지어 풀 수 있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수능 공부하기도 바쁜 고3 현역에게 당장 신문을 읽으라고 하는 것은 좀 무리일 수 있어 저도 조심스럽지만, 하루에 30분 정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막상 공부하느라 바쁜데 30분도 아깝다는 분이 있다면, 실제로 자기가 24시간을 완전 공부만 하는지, 중간중간 빈둥대는 시간만 빼도 30분은 충분히 나오지 않는지 반성해 보세요. 물론 저는 고2 때부터 꾸준히 신문을 읽었고, 심지어 고3 때도 날마다 신문을 완전 정독했다가, 수능에 실패한 사람이라, 정확한 답을 드리긴 어렵습니다. 당장 수능 성적의 압박이 없는 학생이라든지(예컨대 수리 영역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시간이 비교적 여유로운 N수생이라면 신문을 날마다 꼼꼼히 읽는 걸 추천합니다. 물론 꼭 신문에서 읽은 내용이 시험에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신문을 꾸준히 읽으면서 저절로 생기는 독해력, 논리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어도 중요합니다. 한예종 영어 문제는 수능 공부로 충분히 커버가 된다고 봅니다. EBS 문제집이나, 유명 강사의 어휘 강의를 주로 듣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무래도 어휘가 제일 중요한 거 같더라구요. 비상에듀 외지웅 선생의 V9를 특히 추천합니다. 분량이 워낙 많고 예/복습이 쉽지 않은 단점이 있지만, 제 나름대로 인강을 하나 추천하라면 그걸 추천하겠습니다. 어법은 저도 잘 몰라서 사실 거의 감으로 찍었습니다. 원래 그래도 되는 건지, 아니면 영상이론과가 경쟁률이 낮아서 그게 먹혔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아, 큰일날 뻔했네요. 참고로, 이 글 전체가 영상이론과라는 전제 아래서 쓰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률이 빡빡한 과를 준비하는 학생은 기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예종 기출 영어 문제를 시간되는 대로 다 풀어 보시는 게 좋습니다. 물론 저도 3개년 정도밖에 풀지 못했지만... 그리고, 풀자마자 답부터 찾지 마시구요, 답을 맞추기보단 두어 번 그냥 풀어 보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그리고 지문과 선지에 나온 단어들은 일일이 사전으로 찾아서 체크하고 숙지해 두시구요. 그렇게 하다 보면 답도 스스로 맞출 수 있을 것입니다.


2차 논술 준비

영상이론과 지난해와 지지난해 2차 논술 문제를 보시면 막막합니다. 뭐 어쩌라는 건지... 영화를 보고 푸는 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디지털 영화가 어쩌고, 메를로 퐁티가 어쩌고, 누벨바그가 어쩌고... 하면 대책이 없죠. 저도 그래서 2차 논술 기출 문제는 구경만 하고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올해 논술은 아직 기출 문제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여느때처럼 영화를 먼저 보고 시작했습니다. 전체 논술 시간이 3시간인데, 그 가운데 영화 상영이 1시간 20분이었죠. 불도 꺼 버려서 문제를 풀기 어렵습니다. 영화는 1927년 무성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이라는 프랑스 영화가 나왔습니다. 한글 자막을 안 붙여 준다는 소문도 있는데, 올해는 다행히도 한글 자막도 같이 나오더군요. 작년에는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가 나왔구요. 더 전엔 우리나라 영화인 <반도의 봄>이 틀어졌다고 알고 있는데, 아마 영화의 교과서격인 작품을 주로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깐, 씨지브이에서 요새 잘나가는 <완득이>니 <고지전>이니 <도가니> 같은 것만 보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물론 이런 영화가 모두 영화적으로 후졌다는 얘기는 당연히 아닙니다만). 영화 비평 쪽에서 저런 상업영화를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구요. 아마 면접 때 최근에 본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유아인 나온 <완득이>를 너무 재밌게 봤어요, 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면, 이게 잘난 척하는 건 아니지만, 제 생각엔, 당연히 불합격 예약입니다. 교수님들은 그런 영화를 안 본다니깐요. 아무튼, 다시 시험으로 돌아와서, 논술 문제는 이런 거였습니다. 기억을 되살려 적어 봅니다.


(혹시 영상이론과를 준비하는 학생이 있다면, 아래 해설은 읽지 마시고, 문제만 읽고 영화를 보면서 혼자 먼저 풀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잔 다르크의 수난>은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습니다. 한글 자막이 없어서 문제지만, 크게 문제될 정도는 아닙니다.)


(1) 무엇이 이 영화를 아방가르드 영화로 만드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라.

저는 사실 아방가르드 영화에 대해 따로 공부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다만 아방가르드가 전위 예술을 뜻하는 단어라는 것만 알고 있었죠. 그러니깐, 아마 좀 당시로서는 참신하고 특이한 촬영 방식이나 스토리 전개를 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답을 썼습니다. 상황을 죽 보여주기보다는 빈번한 화면 전환을 통한 인물 간의 대사로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것, 그리고 성문 장면에서 카메라를 거꾸로 들고 찍은 것을 예로 들어서 간략하게 썼습니다. 물론 이게 정답인지 아닌지는 제가 알 길이 없지만, 그렇게 썼다구요.


(2) 배우의 연기 말고, 이 영화가 무엇으로 감정을 표현하는가?

가끔 인물의 충격을 강조할 때 얼굴을 빠른 속도로 클로즈업하는 장면이 두세 번 나왔던 거 같고, 특이하게 막 침튀기며 말하는 입을 클로즈업한 적도 두어 번 있던 거 같아 그 얘기를 썼습니다. 또, 배경음악이 감정과 함께 고조된다는 얘기도 썼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확대와 음악을 통해 감정을 표현한다는 뜻이죠.


(3) 극중 시퀀스 하나를 골라 자세하게 분석하라.

위 문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에 대해 자세하게 공부해 둘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아방가르드'와 '시퀀스'가 무엇을 뜻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튼, 저는 사형장 시퀀스를 골랐습니다. 계속해서 화면 한구석에 교회(여기서는 중세 유럽 성당이죠)의 십자가가 나오는 게 특이하길래, 여기서 십자가는 교회의 권위를 상징하고, 더불어 이런 한 소녀의 죽음이라는 비극에는 교회가 그 역할을 행했다는 것을 게속해서 보여 주는 것이라든지,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잔다르크-교회 십자가 이렇게 세 물체가 동시에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이걸 들어 이 장면에서도 진짜 그리스도는 중세 교회가 아닌 잔 다르크에 있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 고 썼습니다.


(4) 무엇이 이 영화에서 공간을 구성하고 탈공간화하는가?

이게 뭔 소리여... 그냥 영화가 계속해서 잔 다르크라는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생각해서 잔 다르크의 이동과 함께 공간이 구성되며 또한 소멸한다, 고 간략하게 썼습니다.


여기까지가 영화를 보고 쓰는 문제였구요, 이제 영어 지문이 두 개가 나왔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지난 논술에는 영어 지문이 전체 세 문제 가운데 한 개씩 나왔었는데, 올해는 바뀌었나 봅니다. 내년엔 어떨지 또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영상이론과는 예나 지금이나 영어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 지문 자체의 수준은 그렇게까지 높지 않았습니다. 수능 고난도 지문보다도 살짝 쉬운 편이었던 거 같고. 하나는 히틀러가 독일 바이마르 헌법을 정지시킨 예를 들면서, 현대 국가에서도 (형태상으로는 완벽한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지금 상황이 위험하니깐 일단 국민 개개인의 자유는 잠시 미뤄두자'는 논리가 나온다는 지문이었는데, 이걸 요악하라는 게 질문이었습니다. 진짜 말그대로 요약만 하지는 않았고, 적당히 요약하고 제 생각도 한두 문장 덧붙였습니다. 9.11 테러 이후의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유신 헌법 같은 걸 봐도 그렇다구요.


다른 하나는, 좀 긴 지문이었는데, 전통적인 미디어에서는 미디어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문화권마다 각각 다른 경험이나 관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예술 작품이 문화의 장벽을 넘기 어려웠지만, 현대에 와서 디지털 도구나 컴퓨터의 발달로 authorship에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난다, 대충 이런 얘기였던 거 같습니다. 저는 사실 authorship이 뭔지도 몰랐어요. author이 작가라는 것만 알았는데, 아무튼 이 지문에 딸린 문제가 두 개 있었는데 하나만 기억나네요. authorship에 대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게 무엇일지 예를 들어서 쓰라길래, 이 글이 디지털 도구의 발달로 인해 여러 사람이 배경지식이나 경험을 공유하게 되고, 이 때문에 문화권을 넘나드는 예술 작품이 가능하다는 얘기이기 때문에, 최근 에스엔에스로 촉발된 중동 민주화혁명을 예로 들면서, 과거 같으면 우리는 이를 매스컴에서 피상적으로 접할 뿐이었지만, 이제는 트위터를 통해 우리 또한 그 혁명에 직접 참가하는 셈이 될 수 있고, 우리 또한 그 운동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는 얘기를 썼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에야 알았네요. authorship은 저자나 출처를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글이 얘기한 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거나, 정확히 말하면, 어느 한 명이 작가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작가의 입장에서 예술 작품을 공동으로 만들어 나갈 수도 있다, 뭐 이런 얘기를 썼어야 하는 거 같은데, 제가 쓴 답안이 얼마나 맞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래도 이러쿵저러쿵 쓰긴 썼으니깐 점수를 아주 안 받진 않았겠죠. 논술은 어떻게든 쓰긴 써야 한다는 게 정말 중요한 거 같습니다.


자기소개서

자기소개서는 정말 중요합니다. 다른 쪽은 잘 모르겠지만, 특히 영상원이나 이론과는 자기소개서가 면접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면접 때 자기소개서만 갖고 질문을 받았거든요. 더군다나 논술과 면접이 6:4라는 어마어마한 비중이 있으니깐요. 그렇다고 논술을 못 봐도 면접에서 뒤집을 수 있다, 는 건 동의할 수 없습니다. 논술을 적당히라도 봐야 면접에서 만회할 수 있다, 는 게 정확하겠죠.


일반 대학 수시에서도 추천 전형 같은 거 쓰게 되면 자기소개서를 쓰는 걸로 알고 있는데, 사실 한예종 자기소개서는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더 유리할 거 같습니다. 저도 그런 거 써 본 적이 없구요. 일반 대학의 자기소개서 기준은 정말... 한심합니다. 그냥 평소에 글을 많이 써 보는 게 중요한 거 같습니다. 자기 생각을 주로 써야 하구요, 뭐 저는 어디에서 태어나 어느 학교를 나와서 이러저러한 집안에서 살았고... 이딴 얘기는 쓰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이런 건 괜찮죠. 저는 자기소개서에 나는 파주에서 자랐는데, 여기가 정말 문화적으로 낙후되어 있어서 씨네마떼끄(영화 자료실, 예술영화관)를 하나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라는 얘기를 썼거든요. 면접 때, 까다롭기로 소문난 김소영 교수가 칭찬하더라구요. "좋은 꿈"이라고. 여기에 자기소개서 본문을 올리는 건 좀 민망하고, 혹시 영상이론과 준비하는 학생이 있다면 쪽지로 물어 보시면 파일을 참고하시라고 보내 드릴게요.


최소한의 자기소개는 해야겠죠. 그래서 처음에는 작년에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썼다가 떨어져서 재수를 하고 있다, 불교학을 공부한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나는 불교의 이러저러한 점에 학문적인 흥미가 있어서 불교학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저러해서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특히 이러저러한 영화를 보고 영화 비평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이 섰으며, 나는 학교 다닐 때 결석이나 조퇴를 한번도 안 했다(이 얘기는 면접 때 물어 보지는 않으시더군요. 교수님들이 좋은 인상을 받았는지 아니면 얜 왜 쓸데없는 얘길 써 놨어, 했을 지는 잘 모르겠네요), 는 얘기를 약간 장황하게 했고, 또 정치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와, 예술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간략하게 써 놨습니다.


과마다 다르지만, 영상이론과는 형식도 없이 줄줄줄 최소 네 쪽을 써야 합니다. 아마 자기소개서를 예전부터 준비하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1차 발표가 나기 하루 전부터 조금씩 준비해서, 그러니깐 이틀-사흘 동안 쓴 셈입니다. 1차 붙는다는 확신도 없는데, 미리 써 두었다가 떨어지면 쪽팔리니깐... 자신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굳이 첨삭 받을 필요는 없는 거 같습니다. 교수님들은 일일이 자구나 글쓰기 실력을 보기보다는 아무래도 내용을 주로 보는 거 같습니다. 그 많은 학생들 거 일일이 꼼꼼하게 읽기도 불가능하구요. '교수님들이 자기소개서를 자세히 안 읽는 거 같아요' 하며 불평하는 학생이 가끔 있는데, 그걸 어떻게 일일이 다 읽겠습니까, 수십 명인데. 당연히 면접 직전에야 훌훌 넘기면서 한번 읽어 보고, 질문하면서 좀 대충 훑어 보고, 그러겠죠. 그렇기 때문에 자잘한 자구에 신경쓰기보다는 전체적인 내용과 틀에 치중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소개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절대 중요해요. 미리 써 둘 생각이 없다면, 최소한 머릿속으로 구상을 해 두시고, 하루이틀 만에 좌르륵 글을 쓸 자신이 없다면 미리 써 두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면접

면접도 물론 중요하죠. 저도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영상이론과의 경우 2차 논술 문제를 면접에 활용하지는 않지만, 같이 두고 보시긴 하더라구요. 아마 채점도 같이 할지도 모르겠네요. 이 면접 파트는 과마다 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률이 높은 학과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후딱후딱 면접을 치러야 하지만, 영상이론과는 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훨씬 널널하게 하는 거 같더라구요. 애초에 배정도 시간당 3명씩이고. 그래서 저한테 좀더 유리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저는 수험번호 2번이었는데(상식적으로 교수님들 힘이 남아도는 아침이 좋겠죠. 그러니깐 엔간하면 원서접수는 빨리 하세요), 대기실에서 제 앞에 여자애(수험번호 1번)가 나갔다가 십 분도 안 돼서 엉엉 울면서 들어오길래 좀 쫄았습니다. 고3 현역인 거 같았는데, 뭐 요즘 세상에 재수는 필수이기도 하고... 해서 안타까운 마음은 사실 별로 들지 않았다는 것은 괜한 얘기고, 아무튼 쫄아서 면접장에 가니깐 교수님이 무려 여섯 명이 있었습니다. 영상이론과는 교수진이 세 명뿐이라 외우기는 쉬워서 미리 알고 갔죠. 남소영-심광현-김소영 교수가 있었구요, 외국인 교수(!) 한 분, 그리고 알 수 없는 교수 두 분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외국인 교수는 동아시아 영화 전공 교수라고. 아무튼 들어갔더니 분주하게(아마 이제야) 제 자기소개서를 읽고들 계시더라구요. 아, 미리 말하자면, 저는 면접을 40분 남짓 봤습니다. 나중에 시계 보고 깜짝 놀랐죠. 그렇기 때문에 제 면접 사례는 굉장히 특이한 쪽에 속할 것이고, 다른 분들도 꼭 이렇게 준비하라는 말씀은 제가 못 드리겠습니다. 보편적인 사례가 아닐 테니깐요.


첫 질문은, 당연히, 작년에 불교학과 썼느냐, 그랬다, 올해 재수냐, 그렇다. 그거랑, 외국인 교수께서 저한테 영어로 물으셨습니다. 불교와 관련된 영화 뭐 본 거 있냐고, 다행히 대답은 한국어로 해도 된다고 하더라구요. 머리를 쥐어짜서 임권택 감독의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얘기했죠. 자세히 보진 않았는데 이런 영화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고. 고개를 끄덕끄덕하고는 그 뒤로는 질문이 없었습니다. 김소영 교수가 물었습니다. 자기소개서에 정성일 감독의 <까페 느와르>를 썼는데, 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냐, 고. 저는 그 영화가 뭐랄까, 회색 빛깔의 서울을 그린 거 같다, 개발 독재의 이면이 어떻고... 하는 얘기를 했더니 김소영 교수가 자기는 이 영화가 그림엽서 같았고, 서울의 물신화(?)를 보여 주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 길래, 음 그게 제 생각하고 상충되는 거 같지는 않은데요, 했더니, 아니 꼭 네 의견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은 이런데, 거기에 대한 네 생각은 어떠냐는 거다, 그리고 한참을 제가 자꾸 같은 얘기를 반복하게 되고... 그래서 또 김소영 교수랑 다른 교수가, 비평이라는 게, 꼭 어떤 정답을 찾아내라는 게 아니라, 서로 대화하는 과정에서, 변증법적이든 뭐든 더 나은 얘기를 찾아내고, 그러는 거다, 꼭 정답을 찾으려고 그러지 말고 네 생각을 말해라, <다른 비평글에서 읽은 것들 말고>. 아무튼 이거 갖고 제대로 제가 얘기를 못하다가, 다른 영화는 뭐 봤냐길래, 아 최근에 김기덕 감독의 <아리랑>과 <아멘>을 봤다, 그래 그건 어떻게 생각하느냐, 길래, 여기서 또 제가 다른 비평가 견해를 인용했어요, 그랬더니, 아니 <까페 느와르>에 대해 얘기해 보라고 기회를 줬는데 놓치더니, 여기서 또 기회를 줬는데 또 인용을 하고 있으면 어떡하냐, 고 그 깐깐한 김소영 교수께서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나름대로 강변을 한답시고 저는 아직 영화를 처음 배우는 학생이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영화를 많이 공부한 사람들 견해를 중심으로 영화를 볼 수밖에 없다, 고 했죠. 그러다가 다행히 생각이 나서 <아리랑>과 <아멘>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을 말할 수 있었어요. 사실 거창한 건 필요없습니다. 이런 식이면 되는 거 같아요. <아리랑>은, 이 영화를 김기덕 감독 혼자서 만들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게 사실 살림까지 혼자 다 한다는 건데, 이게 우리의 삶, 인간에 대해 본질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자는 거 아닐까, 그래서 영화라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밑바닥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고 하는 게 아닐까, 그런 거 같다고 했고, <아멘>은, 2차 논술 때도 비슷한 얘기를 썼는데, 일단 제목 자체가 '아멘'이고, 영화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성당이 나오는데, 과연 주인공이 이렇게 힘들게 세상을 헤메고 있을 때 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를 물은 영화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고 했어요.


남소영 교수께서 <까페 느와르>를 두고, 이 영화를 평론가가 만들었다는 점에 착안해서 뭔가 얘기를 해 보라고 힌트를 주셔서, 아 아마 그 분(<까페 느와르>를 만든 정성일 감독)이 평소 <아바타> 쓰리디(3D)도 비판하고 그랬었는데, 그런 것처럼 아마 감독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당신(대다수 한국 영화 소비자)들은 이 영화가 매우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사실 진짜 영화라는 것은 이런 거다, 라는 게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고 말했죠.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가 잘난 척만 잔뜩 한다고도 느끼겠지만 말이죠.


그것 말고 어떤 다른 교수께서는 저한테, 정치에 관심이 많은 거 같은데, 미학과 정치가 충돌하면 어떡하겠느냐, 는 질문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미학과 정치가 충돌한다면 이를 잘 융합하는 방향을 찾아야 할 거 같다, 예컨대 우리나라가 독재 정권을 겪으면서 어떤 시는 너무 미학에만 치중했고 어떤 시는 너무 정치에만 치중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나는 황지우 시인이 여기(미학과 정치를 잘 조화시킨 케이스)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고 말씀드렸더니, 꼭 미학과 정치가 이분법적으로 나눠지는 거냐, 미학(만)을 추구했다고 해서 정치성이 없는 건 아니잖느냐, 고 하시기에, 아 예컨대 독재정권 아래서 예쁜 꽃이나 아름다운 자연에 대해 얘기하는 시가 있다면, 이 시가 미학(만)을 추구한 것 같지만, 사실상 이 안에 독재정권을 은연중에 정당화화는 정치성이 들어있을 수도 있다, 이런 얘기를 하시는 건가요, 라고 했더니 그 교수께서, 그러니깐 아까 학생이 말한 것(미학과 정치의 이분법)에 모순이 있죠? 라고 하시더라구요.


슬슬 마무리 단계에서 심광현 교수가 황지우 시집 뭐 읽어 본 거 있느냐, 기에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정식 시집은 안 읽어 봤고, 주로 선집이나 그런 걸로 읽었다, 고 말했고, 철학책 읽은 거 뭐 있냐길래(사실 몇 권 있었는데!) 막상 생각이 안 나서 따로 원전 읽어 본 건 없다, 고 얘기했죠. 김소영 교수께서 그래도 면접을 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거 같다길래 약간 기분이 괜찮았고, 마지막으로 파주에 씨네마떼끄가 생기는 걸 보고 싶네요, 하면서 면접이 끝났습니다. 아, 그 전에 김소영 교수께서 꼭 씨네마떼끄를 만드는 데에 영상이론과를 와야 하냐, 고 묻기에, 저는 꼭 어떤 직업을 미리 생각해 두기보다는 대학에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고 말했고, 또 영상이론과에 영상기획전공(영화 프로그래머 같은 거 육성하는 전공)도 있지 않느냐고 말씀드렸습니다.


면접 후기

제 생각에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일단 그 전에 자기소개서를 잘 써가는 것, 그리고 영어 공부를 많이 해 두는 것. 결정적으로 쫄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요새 '쫄지마 씨X'이라는 말이 유행이라지만, 어쨌든 면접에서 교수가 당연히 대놓고 칭찬하지 않죠. 교수가 궁금한 건 자기에 대한 비판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그리고 평소 아는 게 얼마나 있는지 정도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가 잘 안되면 되묻는 게 좋구요, 또 당당하게 교수한테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라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하구요, 잘난 척할 만한 게 있다면 마음껏 해도 됩니다. 너무 나대다가는 역관광(?) 당할 우려도 있지만요. 결국 자기 소신이 중요한 거 같습니다. 그리고 탄탄한 논리를 갖추는 게 좋을 테구요. 저는 면접에서 '책 뭐 읽었어?' '최근에 영화 뭐 봤어?' 라는 질문이나 시사 상식을 물어 볼 줄 알고 좀 잔뜩 준비해 갔는데 막상 그런 건 하나도 안 물어 봐서 쓸모가 없기도 했습니다. 좀 슬픈 얘기지만, 임기응변이 중요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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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에서 만난 까페 운영자께서는 영상이론과를 가려면 각종 어려운 철학책 원전 같은 걸 섬렵해야 한다, 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사실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습니다. 물론 운영자꼐서도 그런 방법을 통해 영상이론과에 학생을 보냈다고 하시니 그 방법도 타당성이 있는 것이겠지만요. 다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저는 평소 책을 좋아한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기가 서점을 좋아하고 이런저런 좀 어려운 책도 잘 찾아 읽는 스타일이라면 한번 도전해 볼 가능성이 있는 거 같습니다. 특히 신문을 빼 놓을 수 없구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상이론과는 영화 매니아를 뽑는 게 아니라, 평소 책을 많이 읽는 학생을 뽑는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럴 거 같아요. 그냥 감상적으로, 영화를 좋아해서 영상이론과에 가고 싶어요, 하면 어느 교수가 좋아할까요. 그렇잖아도 요즘 세상에 영화 매니아 자처하는 학생은 차고 넘쳤습니다. 차라리 그런 쪽을 원한다면 수능 공부를 해서 일반 대학 영화과에 가는 게 더 나을 것입니다. 책도, 만날 무슨 베스트셀러만 골라 읽으면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예컨대, <정의란 무엇인가>. 물론 이 책은 좋은 책입니다. 그렇지만 일반 대학 논술 준비에나 쓸모가 있을 테지, 한예종 준비에 도움이 되는 책을 꼽으라면 저런 건 아닙니다.저도 하나도 안 읽었습니다.뭐 무슨 책 안 읽었다는 게 자랑은 아니지만... 베스트쎌러에 없는, 약간 학술적인, 그렇다고 무슨 맑스나 베냐민 원전을 파고들 필요까진 없구요, 그런 책들을 좀 찾아 읽으시면 좋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추천해 드린다면, <문화/과학>이라는 계간지가 있습니다. 내용이 비해 책값이 좀 비싼 건 사실인데, 영상이론과 심광현 교수가 편집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고, 영상이론과와 관련된 사람들의 글도 자주 실립니다. 저는 이거 몇 번 읽었구요, 신문은 <조선일보>랑 <경향신문> 읽었습니다. <한겨레>도 시간나면 읽구요. <조선일보>가 욕을 많이 먹지만 아무래도 수십 년 간 쌓인 노하우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경제면 심층 분석 기사 같은 건 매우 유용합니다. 꼼꼼하게 읽으세요. <경향신문>은 좀 투박하지만 이념적 지향이 저랑 비슷해서 계속 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지면 개편도 꾸준히 하고 있구요. <한겨레>도 많이들 읽는 거 같은데, 한예종 입시에는 <조선일보>랑 <경향신문>이 좀더 나을 거 같습니다. 영상이론과라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신문을 여러 개 읽어 보고 지면 구성이나, 편집이나, 이념적 지향이나, 그런 거에서 자기한테 맞는 걸 찾는 게 좋겠습니다.


아, 시집도 많이 읽으세요. 요즘 나오는 시집 말고, 문학적으로 이미 예전에 인정받은 시인들, 예컨대, 황지우(한예종 총장도 하셨던!), 김지하, 유하, 김광규, 기형도, 김수영 등등... 수능 언어 문제집에 자주 나오는 시인 있잖아요. 그런 시인의 유명한 시집 한두 권씩은 읽어 보는 게 좋습니다. 읽어 보는 게 좋다, 기보다는, 제가 그랬다는 거죠. 문학평론도 좀 찾아 읽어 보면 좋구요. 유명한 김현 선생의 문학평론집 정도는 하나 읽어 보면 좋을 거 같습니다. <씨네21>도 꾸준히 읽으면 물론 도움이 당연히 됩니다. 그밖에 영화 이론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는 책들, 예컨대, 저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대학 입문 교재 같은 게 있을 거에요. 그런 거나, <까이예 뒤 씨네마 영화이론> 이라는 씨리즈가 있는데, 이것도 두어 권 읽었구요, 한길사에서 나온 <현대영화이론> 정도 읽었습니다. 영화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책은요. 최근에 나온 정성일 평론집 같은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영화도 교과서적인 영화를 많이 보는 게 중요합니다. 꼭 '많이' 볼 필요는 없고, 중요한 걸 골라 보는 게 필요하죠. 알프레드 히치콕이나, 누벨바그 영화나, 임권택, 김기덕, 홍상수 같은 거. 굳이 묻지도 않았는데 누벨바그에 대해 마구 떠벌리다가 괜히 당할 필요는 없겠지만요. 영화를 본다면 주로 이런 영화를 골라 보는 게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씨지브이 일반관보다는 무비 꼴라주 관에 더 자주 가시구요, 서울 곳곳에 예술영화관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물론 다 가 본 것은 아니지만, 낙원동 서울씨네마떼끄, 신촌 아트하우스모모, 건대 씨네마떼끄,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광화문 씨네큐브, 등등. 이런 데에서 하는 영화를 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준비하면서 궁금한게 있으시면 덧글이나 쪽지로 물어 보시면 최대한 대답해 드릴게요. 물론 제가 입시 지도 경험이 있는 선생이 아니라서 전문적인 지도는 어렵겠지만...


긴 글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추가: 외국인 교수는 '얼 잭슨 주니어'라는 영상이론과 초빙교수라네요. 김소영 교수 등과 같이 쓴 책도 있던데, 관심있는 분은 한번 찾아 보세요.



1.


 , 올해가 두 번째 입시인 저는 지난해 입시 때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한 군데만 원서를 넣었


습니다 요즘에 . 자발적으로 불교학을 대학에서 배우겠다고 나서는 학생은 사실 흔치 않은 것


이 사실입니다 헌데 . , ( ) ( ) ‘ 저는 사람들 그러니깐 선생님 어른 과 학생 청소년 모두가 취업 잘 되


는 학과 만’ . 찾는 것이 너무 의아했고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래서 더더욱 제 결심이


굳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까지 . ‘ ’ . , 휩쓸리면 안 되지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아무튼 제가 불


교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나무에 대해 생각할 때 당신은 그것을 다른 것과 분명하게 구별하여 분명하게 정의된 대상


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떤 , . 수준에서는 그러합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차원에서는


나무는 독립적인 존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관계의 . . 그물속으로 녹아들어가 버립니다 잎


사귀에 떨어지는 비와 나무를 , , 흔드는 바람과 그것을 받쳐주는 땅이 모두 나무의 한 부분을


이룹니다 생각을 . , 해 보면 궁극적으로는 우주 속의 모든 것이 모두 나무의 한 부분을 이룹니


다 그것은 . . . 고립될 수 없습니다 그것의 본성은 순간순간 변합니다 그것은 한순간도 똑같지


않습니다 이것이 . ( ) . 공 의 空 의미입니다 사물이 독립된 존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


입니다 헬레나 .” ( - , < > )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에서


 . 이 이야기는 티베트의 불교도가 지은이에게 해준 말입니다 불교의 기본 원리인 제행무상


( ) ( ) , 諸行無常 諸法無我 과 제법무아 의 원리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이 이야기를 읽고 저는 불


교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절에 가서 불공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가족의 합격을 위해


철야기도나 하는 그런 , , 식의 단순한 기복신앙이 아닌 우리의 존재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근


본에서부터 사유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철학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 이것이 제


인격 형성이나 제 신념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 이것을 영화와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는 저에게 남겨진 숙제입니다.


2.


 . 사실 제가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닙니다 저도 여느 청소년처럼


영화라는 것이 단지 일종의 심심풀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 수능 공부가 너무 지루했던 고


3 , < 21> , 때 점심 시간이면 학교 도서관에 가서 영화 주간지 씨네 을 읽었는데 이쯤부터 제가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 영화를 갖고도 이렇게 많고 깊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당시의 저로서는 놀라왔고 영화


가 분명히 예술의 한 분야이며 이를 분석하고 비평하는 영역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어렴


풋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 , 주변을 봐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를 별로 높게


치지 않거나 예술의 한 분야라고까지 생각하지는 못하는 듯합니다 이는 . 우리 영화가 지나치


게 상업주의에 경도된 면도 있을 수 있고 사람들이 , 먹고 살기 바빠 제대로 된 문화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데서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 , 그런 것이 아니라면 우리 사회가 인문학이나 순수 학문 자체를 경시하기 때문에 또는 애


초에 학문이라는 단어 자체가 권위를 잃고 공부라는 , 일이 단지 개인의 출세를 위한 수단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 , 저는 공부와 학문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대학에


서 학문을 해 일가를 이루기로 결심한 사람입니다 우리 . 사회에서 영화에 대한 담론을 더욱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대, 중이 영화에 좀더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제가 영


화를 공부할 영화학도로서 가지는 마음가짐입니다 더. 나아가 저는 우리 고등학생 가운데서


대학에서 정말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는 학생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제가 . 영화를 공부하는


일은 이 일에 일조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3.


 . 좀더 본격적으로 영화에 관심을 가진 건 수능을 끝낸 뒤입니다 특히 홍상수 감독을 만나면


서부터 그러했습니다 사실 . , , < 홍상수 감독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옥


희의 영화 를> . ‘ ’ .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영화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습니다


제가 이때까지 본 영화와는 확연하게 달랐던 것입니다 지나 . 친 극정 구성이나 스펙터클한 효


과 복, 잡한 스토리 없이도 짤막짤막한 이야기를 이어붙이는 것만으로 전혀 새로운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여 얽히고 섥힌 갈등을 그려내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 그 뒤로 홍상수 감독의 다른 영화를 계속 찾아 보고 또 그에 관련된 글이나 기사도 찾아


보면서 그렇게 지난 겨울을 보냈습니다.


4.


 ( ) 홍상수 감독과 함께 제게 큰 영향을 준 영화인을 꼽으라면 정성일 감독 평론가 을 꼽겠습니


다 올해 . 1 , < > , 월 그의 영화인 카페 느와르 를 극장에서 보게 되었는데 이것 또한 홍상수 감독


의 영화와는 다른 의미에서 저에게 충격이었습니다. , 솔직히 말해 그냥 멋있어 보였는지도 모


릅니다 어. . 쨌든 이때까지 제가 알던 어느 영화와도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은 확실했습니다 그


리고 기어이 이런 영화를 만들어낸다는 신념과 의지가 와닿았습니다.


 , . 나중에 영화를 본 뒤에 감독과 자리를 갖는 씨네토크에도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자


리에는 허문영 평론가도 있었는데 저는 , ‘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영화를 갖고도 저렇게 잘


난 척을 할 수 있구나 하는 ’ . , 생각도 했나 봅니다 제가 과문한 탓이었는지 그런 사람들은 그


때 처음 보았거든요 그리고 . 저는 영화 비평을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이 그때 거의 완전히 섰다


고 생각합니다.


 , , “ 특히 기억에 남았던 말을 꼽으라면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유명한 교수들을 자주 만나러


다녔는데, ” “ 내가 영화를 공부한다고 얘기하면 다들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는 것과 어떤 사람


들은 내가 써온 글이 지나치게 현학적이거나 잘난척하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그들은 , 지난 수


십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영화가 어떤 대접을 받았었는지 간과하고 있다 는” . 말이었습니다 제


가 위에다 쓴, “ ” 한국에서 영화에 대한 담론을 더욱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 는 말은 여기


서 배운 것입니다.


 < 21> , 당시 씨네토크는 씨네 이 마련한 자리였는데 나중에 실린 관련 기사에 제가 질문했던


내용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 조금 민망하지만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날의 자리에서 마지막을 장식한 한 관객의 질문 그리고 정성일 감독의 태도가 인상적이


다 파주에서 . CGV 이곳 상암 까지 대화를 들으러 온 것이라고 말한 뒤 한참을 본론으로 들어가


기를 주저하던 한 관객은 < >“ 카페 느와르 를 가리켜 그런데 사실은 롱테이크 영화는 편하자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냐 고” .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물었다 정성일 감독이 특유의 웃음을 살며


시 지은 다음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사실 . “ . 72 해보고 알게 된 것이지만 편집영화가 더 쉽다


테이크를 찍은 장면도 있었지만 원하는 촬영에 실패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장면은 편집상


에서 다시 넣지 않았다 그리고 . . , 분명한 건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영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음에는 더 잘하겠다 웃음 그리고 ! ( )” . 머리 숙여 관객을 향해 인사했다 상암에서 파주로 돌


아가는 그 관객의 머릿속에 이날의 대화가 한편의 영화처럼 한번 더 떠오르고 그리고 , 그것이


그에게 영화에 관한 어떤 또 다른 사유를 일으키기만 할 수 있다면 그럼 , 오늘의 내가 할 일


은 한 것이라고 아마도 정성일 감독은 겸손하게 말할 것 같다 씨네 호 .” (< 21> 802 )


5.


 . 저는 교내에서 그다지 좋은 성적을 받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성적 부분에


서 내세울 것은 일부 내신 과목에서 1 . , 등급을 받은 사실뿐입니다 그 전에 지금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출결 기록에 대해 먼저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생. , 활기록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고등학교를 다닌 3 , . 년 동안 단 한 차례의 결석이나 지각 조퇴를 하지 않았습니다


 , 착실함이 무조건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학생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기


본 덕목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물론 모든 학생이 모범생일 필요도 없고 저 또한 모범생 스


타일로만 사는 것을 그다지 바람직하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그, 전에 학생 꼬리표를 달았고 학


생 행세를 하려면 최소한 학업에 충실하는 것이 전제조건이겠지요 학교 . 체제나 입시 체제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은 그 다음 일이어야 할 것입니다.


 , ( 1 ) 그리고 만날 바닥을 기던 수학을 빼면 교내 과목 우수상 내신 등급 학생에게 주는 상 도


몇 개 받았습니다 이렇게 . , 과목별로 극단적인 결과가 나온 것은 제가 수학을 너무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 . . 공부를 도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뿐입니다 부끄럽지만 그렇다고


후회도 하지 않습니다 아마 . 제가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간다 해도 수학 공부를 절대 열심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 문학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은 기본 소양으로서 최소한의 수학적 지식


을 갖추면 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고 지, . 금도 그 생각은 별로 변함이 없습니다 이런 식의


공식과 숫자 놀음보다는 차라리 수학과 철학이 하나였던 옛날 서양 지식인의 저작을 공부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 ) . 제가 좋아하고 성적을 잘 받았던 과목은 도덕 윤리 과 정치 과목이었습니다 학문을 단지 공


부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는데 저


는 두 과목을 즐기다시피 한 셈입니다 그리고 . 자기가 공부하는 것을 즐길 때 좋은 결과가 나


올 수 있다는 것 또한 증명되었구요.


 . , 특히 정치 과목은 중요합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신문을 꾸준히 읽었는데 이 때문에


정치 과목에 자연스럽게 흥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다만 .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학교에서 배우


는 정치는 우리의 정치 현실을 거의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에 과연 ‘ ’ 민주시민 육성 에 얼


마나 큰 도움을 줄지 의구심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고. 등학교 때 우리 정치 현실을 간략하게나


마 배워 두어야 투표권을 얻었을 때 진정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것이며, 정치 권력의 잘못


을 비판하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아쉽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정치 과목을 배우며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균형과 견제의 원리


를 좀더 체계적이고 이성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민주주의를 배우면 배울수록 이에 대


한 강한 신념과 확신이 생겼습니다. ( ) 물론 여러 종류가 있지만 민주주의는 인류가 생각해 낸


가장 바람직한 정치 체제 가운데 하나이며 우리가 , 지키고 현실에서 끊임없이 구현해 나갈 제


도라고 느꼈습니다.


 물론 영상이론과를 지원하는 자기소개서에 뜬금없이 정치 얘기를 끌어오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확신과 신념이 없다면 어떻게 영화를 만들거나 해석


할 수 있을 것이며, . 민주주의에 반하는 영화를 어떻게 가려내고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


니 영화와 민주주의는 얼핏 완전 다른 말 같아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기실 . 모든


예술과 민주주의의 관계가 그러할 것입니다 이는 . 모든 영화가 민주주의를 선전하는 프로파간


다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우리 , , 사회의 민주주의가 확산하는 데 기여해야지 최소한


훼방은 놓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 , 비평의 역할은 좋은 예술과 그렇지 못한 예술을 구별해 내는 것입니다 예컨대 어떤 영화


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나 계급 관계를 왜곡해서 표현한다면 비평의 , 역할은 이 영화가


‘ ’ , 나쁘다 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데에 있으며 설사 대중이 이 영화에 열광할지라도 그것이 잘


못된 관점이며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데에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다만 주의해야 , . 할 점은 이런 생각이 곧 엘리뜨주의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엘


리뜨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대중과 무조건적으로 영합하지는 않는 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비


평의 할 일일 것입니다.


6.


 (cinemathéque) . 제 꿈 가운데 하나는 우리 파주에 씨네마떼끄 를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자


란 이곳 파주에는 이렇다 할 문화시설이 거의 전무합니다 그나마 . 일산 지역과 가까운 파주


남쪽 지역은 신도시나 아울렛 매장 출판 , 단지 들이 들어서면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날로 발


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른 , 바 휴전선 접경 지역인 북쪽에는 변변찮은 영화관 하나 없


고 그나마 , . 문화시설이라 할 만한 것은 읍마다 하나씩 있는 작은 시립도서관뿐입니다 이쪽에


서 학교를 다니는 대부분의 청소년은 연극 공연 하나 제대로 볼 기회가 거의 없으며 남는 , 여


가 시간은 읍내 피씨방에서 허비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 , 굳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서울 지방 사이의 격차 문제를 꺼내오지 않더라도 소득


수준이나 태어난 지역에 비례해 문화생활의 수준이 결정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일입


니다. , 물론 사람의 취향과 취미는 제각각이고 더 고귀한 취미와 저급한 취미가 따로 있을 수


도 없겠지만 어, 떤 지역에 사는 청소년 대부분이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누릴 기회가 없고 대부


분을 피씨방이나 이와 비슷한 곳에서 보낸다고 할 때 이것이 ,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지역


주민인 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 좀더 극단적으로 말해 이곳에는 희망이 거의 없다는


말이 정확할 것입니다.


 , , ( ) 그럼에도 저는 청소년이라는 존재의 잠재 가능성을 믿고 또 남들이 지역 주민이 거의 포


기하다시피 한 이런 시골 촌구석의 청소년에게도 분명 끌어낼 것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렇게 볼 때 ( ) 앞으로 이곳에 생길 씨네마떼끄는 단순한 영화 자료실이나 영화관이 아닌 한 지


역 청소년의 문화 수준을 끌어올리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시설이 됩니다 아. 직 구체


적인 계획을 짜기는 어렵지만 예, , 컨대 지역 학교와 연계해 영화 관련 수업이나 강연 또는 동


아리 활동을 적극 지원한다는지 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7.


 , . 제가 영상이론과에 가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저에게 옳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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