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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20 드라마바이블 12일 차 묵상

 

마태복음 24:4-13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우리는 역사를 배울 때 시대의 구분을 한다. 시대의 구분이란 역사 발전을 각 시대의 경향과 추세라고 할 수 있는 특징에 따라서 몇 개의 시기로 구분하는 일이라고 사전에서 이야기한다. 그런 시대의 구분상 오늘날의 시대를 우리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라고 본다(물론 구조주의 또한 중첩되긴 하지만 여기서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위주로 다루려고 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개성과 자율성, 다양성, 상대성 등을 중시하며 절대적 이념이나 가치, 그 기준을 거부한다. 모든 것은 탈절대적이며 상대적인 가 바로 모든 일의 시작이다. 역설적으로 상대적인 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대두된 철학이며 현상이다. 전후 인간의 본질과 실존에 대하여 고민했던 사람들은 한발 더 나아가 상대적 가치의 중요성을 제시하였다. 이성이 이성을 부정하며 말이다. 우리는 이것을 혼란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질서 속의 비질서이며, 비질서 속의 질서라고는 보지 못하는 것일까? 헤겔이 말하였듯, 정과 반, 그것을 뛰어넘는 아우프헤벤은 철저한 역사의 인과론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정의하는 것도, 정의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 시대의 흐름 속에 사는 사람이 어찌 그 흐름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바다에서 헤엄치는 동안은 바다의 깊이는 모르는 법이다. 숲 속에서 거닐 때 숲의 광활함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런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에서도 상대주의는 교회에서 결코 통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미 절대성을 지닌 존재와 그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말씀의 본질을 공부하는 것은 좋다만, 이 본질을 상대적으로 엮어버려서 교묘한 말장난과 언어적 구사로 제멋대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멋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왜곡한다.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외칠수록 사람은 비아냥댄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가 가르친 사랑의 형태가 그들로서는 이해가 될 수가 없다. 낮은 자 가운데 함께 하셨고 부족한 자들과 함께 하셨던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랑은 논리적인 행위보다는 비논리적 행위로 보는 것이 옳다. 사람이 타인을 위해 그의 삶을 희생한다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독교 역사 속에서 삶 가운데 끝까지 기독교적 진리와 긍휼의 사랑을 지켰던 사람을 여전히 기억한다. 일반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의 비아냥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성경과 십자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제멋대로 해석하고, 자신이 곧 진리인양 행동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마24:11). 그것은 과거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고 있으며,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위해 성경과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용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은 악하고, 약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팽배하는 시대에 그들의 악한 영향은 사람들의 사랑을 식게 할 것이라고 예수님은 경고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인간의 악함과 한계를 보며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역사를 제멋대로 결과 지으면 안 된다. 때는 익지 않았고, 우리는 아직 구원의 역사 가운데에 있지 않은가. 이 상대적인 가치가 제시되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절대적인 가치는 분명 시대를 관통하고 악해진 세대를 온전한 모습을 되돌려놓을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히려 이런 시대이기에 우리의 절대성은 더욱 의미를 내비칠 수 있다.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24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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