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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8 드라마바이블 성경묵상 4일차 [200일 과정]

 

시편 10

사무엘상 13-15

마태복음 7-8

시편 9

 

 오늘도 늦은 시간에 글을 쓴다. 밤이 되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것일까. 하늘이 차분해지고 더운 것이 가실수록 문장이 더 잘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어서 빨리 여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어쨌든, 밤에 묵상을 쓰는 것은 반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밤에 문장을 쓰다 보면 묵상보다는 일기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오늘의 묵상 내용은 산상수훈이다. 이 산상수훈은 아마 많이들 들어봤을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온 많은 사람들에게 산 위에서 하나님 나라와 지켜야할 계명과 말씀에 대하여 비유를 통해 설교하신 것이 바로 산상수훈이다. 예수님은 이 당시에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갑자기 나타나서 병든 사람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다.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은 점차 이 예수라는 인물에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가 어디 나타나면 우르르 쫓아가는 것이다. 그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고,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냐고 물으면서 말이다. 정말 대단하면 나의 병 또한 고쳐주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그들은 예수를 쫓아다닌다. 그 인기란 마치 지금의 아이돌과 같다. 팬들을 우르르 몰고 다니는 예수님은 그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어쨌든 사람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쫓아다닌다. 병 고침과 가르침을 간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쫓아온 그들을 모아 두고 설교를 시작했다.

 

 그 설교의 서두는 팔복에 대한 언급이다. 여덟 가지 복의 형태에 대해 언급하며, 이런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누가복음에는 이 산상수훈에 준하여 평지설교가 있다. 그리고 팔복에 준하여 사복사화가 있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산상수훈과 팔복은 알면서도 누가복음의 평지설교와 사복사화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학교 수업 때 김호성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천국은 너희와 같은 자들의 것이며,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며 그들을 다독이신다. 또한 구약의 율법과 계명에 대해서도 언급하신다. 나는 율법이나 계명, 시대가 이어짐에 따라 내려온 전통을 없애려고 온 것이 아니고, 오히려 너희가 잘못 알고 있었고 잘못 해석하고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다시금 제대로 가르쳐주러 온 것이라고 이야기 하신다(마 5:17-18). 더불어 모범적인 윤리와 도덕적인 상의 가치 규범을 제시하신다. 이 여러 가르침은 결국 너희를 통해 도래하시는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며,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모습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들은 사람들은 열광했다. 이는 당연한 결과이다. 제대로 된 율법교사가 없었고, 제대로 된 리더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대의 사람들에게 "언어"란 권력의 일종이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싶고 그 말씀대로 살고 싶은데, 내가 태어난 배경이 풍족하지 못해서, 때로는 계급적 한계에 부딪혀, 글을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그러니 사람들은 말씀을 알기 위해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의 강의를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간사한지라 자기의 입맛대로 글을 해석한다. 그리고 멋대로 판단한다. 더불어 자신들의 권력의 총체를 다른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아 지식을 특권층의 부분으로 일임해버린다. 교회의 타락은 중세 교회의 모습을 보면 적나라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중세 교회는 라틴어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것도, 그것을 해석하고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성직자에게만 일임하였으며 그것은 결국 기독교 내의 계급화와 부패 및 타락을 양산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고치기 위한 종교개혁의 부분에서 성경 번역이 가장 큰일이었던 것은 감안한다면, 그보다도 이전의 시대였던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라는 존재에 대해 열광했던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예수는 랍비였고 성경에 능통했다. 그렇기에 번번이 생겼던 율법교사들과의 언쟁에서도 결코 지지 않았다. 그렇게 아는 것이 많았고 그렇게 말도 잘했는데 예수님은 여기서 한 가지 더 경계하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자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가르치고, 오해하고 있던 것을 바로잡아주었고, 율법의 온전한 이해를 돕고 올바른 가치규범을 제시하더라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는 것을 강조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보아야 하는 것은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그 가르치는 사람을 쓰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고 있었고, 모두가 그를 그리스도라고 인정하였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결코 넘지 않았다. 예수님을 보러 온 수많은 군중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번 강조하신다.

 

 나는 내 전공이 신학이다보니 아무래도 나에게 성경에 대한 질문을 하는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된다. 내 평생 성경을 연구한다 해도 다 알 수 있겠냐만은, 어쨌든 전공도 신학이고 공부도 계속하고 있으니 아는 만큼 대답은 해주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내가 아는 것이 잘못되었으면 어쩌나 늘 조심하며 하루의 묵상을 쓸 때에도 여러 주석서와 책들을 참고하곤 한다. 그러면 이런 글을 하나 쓰는데 수 시간이 들어간다. 그런데 그게 힘들지 않다. 오히려 즐겁고, 또 즐겁다. 늘 묵상에 쓰는 말이지만, 하루하루 성경을 새롭게 알아가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말씀의 이해를 돕는 내가 때로는 오히려 말씀보다 더 앞서가는 것이 아닌가하고 말이다. 내가 아는 부분만 집중적으로 아는 체하고, 모르는 부분은 스리슬쩍 넘어가며, 난 성경을 이만큼 알고 있다고 자랑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가르칠 때에 사랑이 아닌 교만함과 오만함으로 가르쳤던 것이 아닐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하셨던 것처럼, 또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으로 가르치셨던 것처럼, 나 또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나를 쓰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사랑으로 성경을 제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바른 리더자의 모습에 대하여 많은 생각이 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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